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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여주) - 경기 여주시 천년의 신비로움이 깨어나다

by 아메르스 2022. 11. 5.

* 신륵사(여주) 개요...

경기도 여주시 봉미산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로서 신라 시대 때 창건되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절은 산 속에 짓는 경우가 많은데 반하여 신륵사는 남한강이 보이는 강변에 세워져 있습니다. 

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입니다. 

 

* 신륵사(여주) 역사...

 신라 때 처음 지어진 것으로 전해졌는데, 전설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한 연못을 메우고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신륵(神勒)"이라는 걸 이름의 우래로는 세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신이한 미륵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두 번째와 세번째는 신륵사의 '륵'자는 말을 다스린다는 뜻이 있다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두 번째 고려 우왕 때 왕사 나옹이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용마를 신비한 굴레를 씌워 얌전하게 다스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고려 고종 때 건너마을에 사나운 용마가 자구 나타나 사람들을 괴롭히자 승려 인당이 나타나 고삐를 잡아채자 순해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설화에 나타난 신력과 굴레에서 '신륵'이라는 이름이 나왔다고 전해집니다. 

신륵사에서는 고려의 고승인 나옹이 머물러 절이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나옹은 1376년(우왕 2)에 신륵사에서 사망하여 이색이 이곳에 대장각을 짓고 <대장경>을 봉안했으며 지금은 나옹과 나옹의 제자인 무학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1379년(우왕 5)에 각신.각주등이 이 절을 크게 짓고, 나옹의 부도를 세웠습니다. 

조선시대에는 144년(세종 22)에 중수하였으며, 1473년(성종 4)에 세종의 능인 영릉을 여주로 이장하면서 영릉의 원찰로 신륵사가 지정되었습니다. 

이때 국가에서 확장하여 크게 중수되어 사찰명은 보은사(報恩寺)로바뀌었습니다.

1671년 (현종 12)에는 계헌(戒軒), 1702년(숙종 28)에는 위학, 천심 등이 중수하였습니다. 이는 원찰로서의 의막 약해진 뒤 신륵사라는 이름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 신륵사의 다양한 문화 유물...

 

  신륵사 인근 강가 쪽 암반 위에 벽돌로 쌓은 다층 전탑이 있어서 고려 때부터 벽 절이라고도 불렸다고 합니다. 나옹화상이 이 절에서 입적을 했고 그의 보제존자 석종은 1379년에 제작된 것으로 고려 말의 대표적인 부도 양식을 띠고 있습니다. 성종 옆에 있는 석종 비문은 목은 이색이 썼다고 합니다. 역사가 깊고 규모도 웅장하며 주위의 경관도 뛰어난 사찰로 경내엔 화려한 극락전을 비롯, 조사당 명부전, 다층석탑, 다층전탑, 석종, 대장각기비 등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8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 문화재 정보 / 한국관광공사 내용 참조 

1) 신륵사 조사당(보물)
2) 신륵사 다층석탑(보물)
3) 신륵사 다층전탑(보물)
4)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보물)
신륵사 조사당 근처의 구릉에는 석종 하나가 그에 딸린 비 및 석등과 함께 세워져 있다. 이것은 고려 말 공민왕 때에 왕사를 지낸 보제존자 나옹화상(1320∼1376)의 사리를 모신 부도이다. 종 모양의 형태를 하고 있어서 석종으로 불린다. 이곳에 석등까지 세워져 있는 것은 나옹화상의 위상이 그만큼 높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고려말의 대표적인 석종 부도로서, 이전의 팔각 원당형 양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조선시대 석종형 부도의 선구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석종형 부도는 통도사·금산사·용연사·봉암사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은 계단탑 형식을 한 통도사·금산사의 양식과 비슷하다. 석종의 높이와 지름은 각각 1.9m와 1.1m이다.
5)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비(보물)
6) 신륵사 대장각기비(보물)
7)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 앞 석등(보물)
8) 신륵사 극락보전(경기도 유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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